베트남의 아버지라 불리는 호찌민 주석의
대통령궁과 오페라 하우스,최고인민법원,
정부 게스 하우스, 하노이 대성당, 동쑤언시장,
롱비엔다리는 프랑스가 80년간 식민 통치시절
세웠던 건물과 시설물들입니다.
건물 색상을 노란색으로 통일해서 진하게
칠한 다음, 이를 관광지화 하였습니다.
또한, 대통령궁과 호찌민이 생활하던
호수와 주변 일대를 관광상품으로 묶어
입장료를 받고 산책을 하는 코스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과연, 그들이 선전하는 대로 호찌민 주석이
놀라운 업적과 훌륭한 인격자와 정치가로
본받을 것인지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호찌민을 향해 출발합니다.
프랑스가 지은 최고인민법원 건물.
이런 건물들뿐 아니라 일반 주거 형태의
주택들도 거의 프랑스풍입니다.
대통령궁입니다.
- 위치: 주석궁은 하노이 흥부옹 거리에 있습니다.
- 운영 시간: 월요일을 제외하는 매일
- 여름(4월~10월): 오전 8시 – 11시, 오후 1시 30분 – 4시
- 겨울(11월~3월) 오전 7:30 – 11시 및 오후 1:30 – 4시
- 입장료:
- 베트남인 방문객은 무료
- 외국인 방문객의 경우 1인당 40,000동(약 US$1.6)
호찌민의 젊은 시절.
호찌민이라는 이름은 중국사람으로 위장하기 위해
지은 이름이며, "계몽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본명인 응우옌 신 꿍(Nguyễn Sinh Cung, 阮生恭)
2004년 외래어 표기법에 베트남어 표기에 관한
세칙이 추가된 후에는 ‘호찌민’이라고 표기합니다.
호찌민은 이 이름 외에도 아주 많은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이름이 많으면 그건 거의 사기꾼이 하는
기초작업인데...
주석궁은 현재 베트남 주석의 공식 관저입니다.
1954년 이전에는 프랑스 인도차이나
총독의 궁전이었습니다.
1900년에서 1906년 사이에 총독의
주석 관저로 지어진 이 건물은 프랑스 건축가
오귀스트 앙리 빌디외가 유럽 스타일로
설계했습니다.
이 프랑스 건축물은 20세기 초(1900-1906년)에
지어졌습니다.
총면적은 약 1,300평방미터로 건물 내
30개의 객실이 있으며, 각 객실은 각기 다른
스타일로 꾸며져 있습니다.
망고나무로 둘러싸인 주석궁은
호찌민 주석이 1954년 12월 19일부터
1969년 9월 2일까지 거주하고 일했던
주석궁 사적지 단지에 속해 있습니다.
호찌민은 젊었을 적 미국으로 건너가
청소부와 식기 닦는 일을 오랫동안 하다가 다시
영국으로 넘어가 영국에서도 생활을 합니다.
또한, 프랑스로 다시 넘어가 프랑스에서도
젊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자기를 도와줄 때만 내편이었습니다.
어학에 일가견이 있어 여러 나라의 언어를
구사하였습니다.
정식적인 대통령궁에서 벗어나 새롭게 지은
호찌민 사저입니다.
이 목조 죽마집은 호 주석이 1958년부터
1969년까지 거주하고 일했던 곳입니다.
그는 타이응우옌 북부 지방을 방문한 후
이 집의 디자인을 선택했습니다.
한마디로 시골 갔는데 마음에 드는 집이 보여
그 집을 본떠 지었다는 아주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말로는 검소하다고 하는데 호찌민 유물로 불리는
것들이 수천 점에 달합니다.
호 주석은 생의 마지막 11년(1958~1969년)을
이 집에서 살면서 유언장을 비롯해
혁명 대의를 안내하는 많은 역사적 문서를 작성했습니다.
전기 기술자가 생활하던 집이라는데(강제로 뺐었나?)
상식적으로 전기 기술자 급여를 생각하면
절대 이런 집에서는 살 수 없습니다.
호찌민은 나중에 이 집에서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호 주석이 1954년 12월부터 1958년 5월까지 살면서
일하던 곳으로, 총독관저로 이사하기 전에
사용했던 집이었습니다.
1954년 이전에는 총독부 관저에서 근무하는
직원이었던 전기 기술자의 집이었습니다.
도대체 집이 몇 채야?
호찌민이 산책하던 공원길입니다.
입장료를 내면 이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오래된 망고나무가 가득한 산책로,
망고 거리는 단지 주변으로 약 200미터 정도
이어져 있습니다.
자기 집 앞에 있는 호수인데 이게 검소한 건가요?
호수를 만들고 이를 관리하고
각종 고기들을 길렀습니다.
주석은 또한 연못의 물고기로 만든 요리로
손님들을 대접했습니다.
전통 명절에는 국가 및 당 지도자들과
주석궁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물고기를
선물로 주곤 했습니다.
"세상에나! "
호찌민은 미국 첩보부대인 OSS 부대원을 만나
인연을 맺고 권총까지 선물을 받았으며
자신이 추천한 이들을 미군 OSS 부대에
입대시켜 훈련을 받게 하였습니다.
이 당시가 프랑스에 대항하는 독립군
시절이었습니다.
집 앞 야외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갖고 있는데
지금은 공산주의라 아무도 말을 못 하지만
호찌민은 베트남 자국민을 수백만 명을 죽였습니다.
중앙일보에서는 호찌민을 훌륭한 정치가로
미화해서 기사를 썼던데 이는, 기레기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위의 사진을 바탕으로 이렇게
멋지게 만들어 입장료를 받고
보여줍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다시 만났던
미국 OSS의 아키메데스 패티(Archimedes Patti) 소령은
이렇게 말을 전했습니다.
"우리 둘이 처음 만난 것은 1945년 4월 30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미군이 베트남을 떠난 날짜가
30년이 지난 1975년 4월 30일이었고요.
그동안에 나를 따라서 280만 명의 미군이
베트남 땅을 밟았는데, 그중에서 약 5만 7,000명은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습니다."
30년이 넘도록 이 조용한 나라에서
벌어진 의문투성이의 전쟁에서
200만 명이 넘는 베트남인들도 희생되었습니다."
라고 밝혔습니다.
호찌민주석묘인데 마찬가지로
입장료를 내고 약품으로 처리된 시신을
볼 수 있는데 돈 내고 시체를 왜 보는 건가요?
1년에 한 번 매년 러시아에서 미이라 담당자가
와서 사체 보존처리를 하고 갑니다.
아직도 그 수준이 안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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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북부 사파에서의 하루입니다.
비 내리는 사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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