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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축제와 거리풍경

알래스카 " 가을과 독립영화 "

by ivy알래스카 2021.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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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면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처음으로 제가 만든 영화 제목이 " 가을"이었습니다.

내용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어긋난 인연을 주제로

제작을 하였습니다.

처음 시나리오를 쓰고 직접 콘티를 짜고 , 연출까지 한

독립영화라 매우 기억에 남습니다.

 

촬영장비 렌탈 업체에서 독일 아리 조명과 달리, 지미집 등

수많은 장비들을 렌털하고 여기저기 수소문 해서 제법 

작동이 잘 되는 필름 카메라와 부속 장비 등을 대여하고

연출부와 촬영팀, 조명과 녹음 부원을 구성해 장소 헌팅과

배우 선정까지 정말 분주하기만 했습니다.

녹음 장비도 빌렸지만 현장음이 중요해 후시 녹음을 

생각하며 촬영 일지를 작성해 매일 저녁이면 회의에

회의를 거듭했었지요.

 

최종 촬영 일정을 수립하고 , 배우들과 사전 리딩을 갖고

슛을 들어갔습니다.

지금이야 모든 장비들이 디지털로 바뀌어 할리우드에서도

모두 디지털로 작업을 했지만 , 당시만 해도 필름 작업이라

돈이 제법 많이 들어갔습니다.

영화진흥공사에서 후시 녹음을 하고, 현상소에서 현상을 해서

편집실을 대여해 편집을 해야만 했습니다.

 

지금은 디지털카메라로 작업을 하고 바로 현장에서 모니터링을

하며 가편집까지 할 수 있으니 정말 세상은 좋아졌습니다.

첫 촬영을 대학로에서 했는데, 워낙 유동인구가 많아 인원

통제가 정말 힘이 들었습니다.

독립영화는 품앗이 작업입니다.

서로서로 자기 작품을 할 때 , 식사만 제공하고  도와주는 거지요.

 

비싼 필름으로 작업을 하기에 Take 도 자주 가지 못하고 미리

리허설을 통해 한두 번에 완성을 해야만 했습니다.

 

독립영화 하는 이들은 보통 Sub Job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동판에서 일을 하는 이들도 많고, 타일 작업하는 건 일당이 높아

선호하는 편입니다.

당시만 해도 영화판이 워낙 최저 시급도 되지 않기에

독립영화를 만든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영국 유학생들은 더 힘들더군요.

짧은 독립영화라 해도 워낙 경비가 많이 들어 

모두들 힘들어했습니다.

 

영화 아카데미는 영화에 대한 교육을 하는 게 아닌, 

영화 제작을 하는 곳인데 졸업 작품 때마다 다들 헉헉 되고는 했는데,

지금 난다 긴다 하는 감독들이 거의 그곳 출신입니다.

대학교와 대학원을 나와 영화 아카데미에 입학을 합니다.

 

오래전 " 하우등"이라는 영화가 생각이 나네요.

가족들에게 십시일반 돈을 거둬 영화를 만들긴 했는데

후반 편집 작업할 돈이 없어 결국, 2년 후에나 개봉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덕적도 앞에 작은 섬으로 장소 헌팅을 갔다가

태풍이 와서 한동안 발이 묶인 적이 있었습니다.

돈도 떨어지고, 먹을 것도 떨어져 정말 난감한 시절이었습니다.

 

나랑 같이 작업한 친구가 시나리오 응모를 했지만

탈락을 해서 아쉬웠는데 , 영화 제목만 팔라고 해서 팔은 그 시나리오가

바로 "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 "였습니다.

자신의 단편영화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시나리오 제목도

이렇게 팔려 나갑니다.

저도 지금 남아 있는 건 " 백수" 한 작품만 영상이 

남아 있네요.

총 23편의 단편영화를 만들었으니 , 에피소드가 넘쳐나

할 이야기는 정말 많답니다.

 

영화 촬영 기간은 보통 1주일 정도입니다.

보충 촬영을 해야 하면 하루나 이틀 정도 하게 됩니다.

더 이상은 경비 때문에 할 수가 없지요.

일반 상업 영화는 3개월에서 6개월 정도입니다.

대작이야 더 오랫동안 하지만 말입니다.

임권택 감독의 " 춘향전" 촬영이 있어서 전주에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디지털로 촬영을 하니, 경비면에서나 일정 등이

널럴 하기도 합니다.

정말 좋은 세상이지요.

당시에는 여기저기 영화제나 시나리오 공모전이 있으면

다들 응모를 하기에 경쟁도 심했습니다.

거기서 나오는 상금으로 영화 촬영을 할 요량으로 너도나도

시나리오 응모를 했습니다.

 

여름방학 때, 청소년 영화 제작 캠프를 최초로

시도를 했습니다.

중고등학생을 상대로 4 크라스를 만들어 청소년 수련원을 빌려

영화 교육도 하고 단편영화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학생들이 만든 영화가 청소년 영화제에서 3등을 하기도 했습니다.

청소년 영화제도 주도를 해 봤고, 학교 선생님 대상으로 시나리오 강의도 

했었습니다.

 

 영화인들은 영화를 마약이라고들 합니다.

한번 영화의 늪에 빠지면 , 도박과 마약보다도 더 무섭다고들

합니다.

영화로 상업적 이익을 얻기 위해서 보다는 

자기의 철학과 이상을 담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세상에 하고 싶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자신만의

색깔을 입혀 세상에 내 보이기 위한 고난의 작업입니다.

 

작품이 끝나면 일종의 허무함과 늘, 부족함이 뒤따라 옵니다.

촬영할 때 , 이거 말고 저렇게 했어야 했는데

편집의 아쉬움도 많이 남는데 , 음악 선택도 정말 중요합니다.

수백 곡의 음악을 들어야 하고, 샘플링 한 음으로 공백을

채워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저 자신도 영화를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뛰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봐야 하지요.

 

지금 이 시간에도 영화 현장에서 고뇌하고 , 고심하는  

수많은 영화인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