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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VY IN ALASKA STORY
  • 알래스카의 낭만

호치민10

베트남 SAPA 야시장이 다른 야시장과 다른 이유는? 요새 며칠 컴퓨터 하드 용량이 부지런히 찍은사진과 영상으로 넘쳐나서 올 스톱 되는 바람에 아주 곤욕을 치렀습니다.  외장하드도 비상용으로 가져왔는데 뻑이 나서크라우드를 구입하려고 했더니, 그것도 길이 막혀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가 부지런히 용량을 줄이고줄여서 꺼져가던 컴퓨터 수명을 연장했습니다. 오늘은 사파 야시장 이갸기를 들려 드리도록하겠습니다.  사파는 하노이에서 북서쪽으로 약 350km 떨어진 북부 베트남 라오까이성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중국과의 국경 근처에 위치한 이 마을은 해발 약 1,600m(5,200피트)의 고도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전략적 위치 덕분에 인도차이나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상징적인 판시판을 포함한 황리엔손 산맥의 매혹적인 전망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사파의 야시장은 다낭이나 호.. 2024. 9. 24.
베트남 여행이 나에게 주는 소확행들을 만나보자! 오늘은 79주년 광복절입니다! 베트남 여행을 하다 보면 소소하지만 나에게확실한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 같습니다.큰 행복을 바라는 것보다는 이렇게 여행을함으로써 자신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여행의묘미를 살려 작은 행복의 우물에 풍덩빠져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여행을 계획 할 때의 설렘,공항에 도착해 수속을 받으면서 기다리는 기대감,여행이 주는 것들은 이미 여행을 생각하는그 순간부터 즐거움을 주는 것 같습니다. 베트남의 작은 소식 하나 전해 드니다.8월 15일 오늘 오전 뉴스주말 동안 호치민시 여러 중심 거리에서 차량 통행이 금지됩니다  8월 15일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8월 16일과 17일 오후 5시 30분부터 10시까지 Nguyen Hue Street(Le Loi Street에서 Ton Du.. 2024. 8. 15.
베트남 다낭에서 삶의 향기를 느끼는 뚜벅이의 하루 태국 호텔에서 베트남인 6명이 독살을당했다는 뉴스가 메인에 걸려 있네요.정말 살벌하네요.같이 묵기로 했던 한 명의 행방을 쫓고있다고 합니다. 호찌민을 여행할 때는 드라이버를 포함한자가용을 대절해서 이용을 했는데 이상하게차량이 더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겁니다.그래서, 이상해서 드라이버에게 물었더니액셀레이터 밑에 나사를 아예 용접을 해서더 이상 속도를 내지 못하게 했더군요.대단했습니다. 도시를 살짝만 벗어나도 아이들이 새끼줄로 꼰 끈에황소개구리를 묶어서 도로에서 파는 걸 자주볼 수 있었습니다. 차를 타고 다니면서 느끼는 것들과 걸어 다니면서만나는 것들의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걸으면서 만나는 다낭 도시의 풍경들을소개합니다.  여기는 베트남 인민군대 건물이라 보초들이 총을 가지고보초를 서고 있네요.아무도 이 앞을.. 2024. 7. 18.
베트남을 여행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에서 여행지 순위를 조사하면 태국이나 필리핀이순위에 들고 그다음이 바로 베트남이며 뒤를 이어엔화 가치의 하락으로 일본이 등장합니다. 저는 , 태국 보다는 오히려 베트남이 마음에 더 드는데그 이유는 다른 나라보다 편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제가 느끼는 물가는 태국 보다 베트남이 오히려더 저렴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위험지수도 태국 보다는 베트남이 다소안전하다고 느끼기도 합니다.특히, 저처럼 발로 걷는 여행자에게는 그 무엇보다도안전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베트남 호치민부터 시작해서 후에까지 더듬었으니다음 달에는 하노이를 한 달 여정으로머물 요량으로준비를 마쳤습니다. 여행은 사는 보람을 느끼게 해 줍니다.북한에 사는 사람들을 우리의 눈높이로 보면엄청 불행한 삶을 살 것 같지만 정작, 그들은.. 2024. 7. 9.
베트남 호이안 사찰에 들렀더니 쑥 떡을 나눠 주시네요 베트남은 남과 북으로 나눠져 있었는데 남북 전쟁을해서 통일이 된 하나의 국가라고 하지만, 문화적으로는거의, 우리나라 남과 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사이공, 지금의 호찌민은 남 베트남이었으며지금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는 북베트남이었습니다. 통일이 되었지만 호찌민은 모든 무역이 호찌민을 중심으로이루어져, 호치민 수입이 베트남 전역을 먹여 살린다고 할정도였습니다. 그래서 하노이는 각종 중앙정부의 권한을 이용하여호찌민에서 올라오는 서류는 절대 금방 내려 보내지않았습니다.물론, 지금도 여전하긴 합니다. 하노이 입장에서는 내세울게 호찌민보다 늘 부족한지라다른 무기가 없으니 허가나 등록에 대한 권한 행사로일종의 딴지 걸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답니다. 남쪽은 민주주의 국가였었기에 자유뷴망하며다양한 취미활동과 개방된 문.. 2024. 6. 29.
베트남에서 왜 호찌민을 사이공이라 부르는 걸까? 베트남 남북 전쟁 전까지만 하더라도 호찌민을사이공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지만 북베트남이전쟁에 승리를 하고 난 뒤, 지명을 호찌민 주석의이름을 따서 사람이름인 호찌민으로 바꾸었습니다. 남 베트남 대통령의 궁을 박물관으로 급 변경하여 모든 이들이 대통령궁을 드나들 수 있게 되었는데마치, 창경궁을 졸지에 동물원으로 만들어 왕의이미지를 없애 버리는 일제의 만행 같아 한편으로마음이 착잡했습니다. 다행히 창경원을 창경궁으로 원상회복은 했지만,그 치욕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습니다.호찌민이라는 지명보다는 정겨움의 지명이름인사이공이라는 이름을 병행해서 부르고 있는데사이공 맥주라든지 조금씩, 사이공이라는 지명 이름이각광을 받고 있는 것 같네요. 호찌민이라는 명칭 혹은, 호치민이라는 명칭을 우리나라에서는 둘 다 사용은 하고 있지.. 2024. 5. 20.
베트남 다낭의 요정과 문화와의 만남 동딘 박물관을 가다 5부 오래전에 베트남 호찌민에서 고서화와 자기 그리고, 팔찌를 사서 공항을 나서는데 일반 종이봉투 백을 들고 덜렁 거리고 입국 심사를 하는데 공안이 뒷돈을 요구해서 10불을 준 경험이 있습니다. 당시, 베트남에서는 무슨 절차마다 모두 뒷 돈을 주어야 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하노이는 자기네 도시가 수도라는 이상한 자부심으로 지방인 호찌민에서 각종 공문서가 올라오면 룰루랄라 버티면서 서류를 즉각 처리하지 않기로 아주 악명이 높았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그래서, 베트남에서 비즈니스를 하려면 고위 공산당 간부와 짝(?)을 이루어야만 가능이 했답니다. 각설하고, 다시 동딘 박물관 마지막 회 6부를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오늘도 변함없이 출발합니다. 박물관 각 섹션별로 가는 길은 작은 산책로로.. 2024. 4. 12.
베트남의 결혼 전통문화와 다낭 바닷가 산책 베트남은 결혼식 자체를 중요시하게 생각하는데 오래전, 일본인과 베트남 여대생의 계약결혼이 치러지는 현장을 호치민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결혼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예식이 가지는 의미를 남다르게 받아들이는 현상이 있습니다. 베트남은 중국에 천년동안 지배를 받다 보니, 자연히 송나라 때 주희가 편찬한 주자가례라는 책의 영향을 받아 조혼이 대세였는데 남자 16세, 여자 13세가 결혼 적령기였는데 반면, 우리나라는 영화로도 나왔지만 꼬마신랑이라고 아직, 초등학생 수준의 나이의 신랑과 장성한 처자와의 결혼 풍습이 있었습니다. 오은 다낭 바닷가를 거닐며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며 베트남의 결혼문화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다낭 바닷가는 호텔촌이라고 불릴 정도로 호텔들이 많아 지리적 위치를 몰라도 아고다에서 숙소.. 2024. 3. 2.
베트남 여행 이야기 " 차가 왜 이러지? " 오늘은 베트남의 오래된 이야기부터 해 보려고 합니다. 호치민에 도착해서 기사가 달린 차를 렌트해서 이웃 바닷가에 가는데 이상하게 차가 50킬로의 속도 이상을 내지 못하는 겁니다. 너무 이상하더군요.그래서, 왜 속도를 더 내지 않냐고 물었더니 세상에나 악세레이터 밑에 나사 하나를 아예 용접을 해서 더 이상 속도를 내지 못하게했더군요. 그 이유를 물으니 , 더 이상 밟으면 사고가 나기때문에 속도를 내지 못하도록 아예 법으로금지를 시켰더군요. 지금은 아닙니다.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아이들이 황소개구리를 잡아 짚으로 묶어서 팔고 있었습니다. 오랜 전쟁으로 남자가 귀한 세상이라 남자들은 거의 놀고먹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던 베트남, 남자가 집을 나가면 그게 이혼으로 인정하던 베트남을 지금 다시 찾아왔습니다. 아름다.. 2024. 2. 6.
베트남 Hue의 밤은 화려하다 베트남 어디를 가도 밤은 늘 화려합니다. 오래전에 호찌민을 방문했을 때, 해만 지면 모두 공원으로 몰려나왔는데 당시만 해도 집에 에어컨이 보급이 안되어 있을 때라 더운 낮을 피해 밤에 모든 운동경기와 공연 등을 공원에서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해만 지면 모두들 대낮처럼 불을 밝히고 공원으로 몰려 나왔는데 아마도 그 이유로 베트남의 밤 문화가 화려했던 게 아닌가 합니다. 당시만 해도 참기름으로 삼겹살을 구워 먹었으며 참기름이 흔해서 4홉들이 소주병으로 하나가 겨우 500원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무슨 요리를 할 때마다 흔한 참기름으로 지지고 볶았던 기억이 새롭기만 합니다. 당시 호텔 이름이 "훼흥" 고향이라는 뜻으로 알고 있었는데 별관을 얻어 별관에서 직접 밥을 지었는데, 쟈스민 쌀이나 안남미 쌀들은 너무.. 2024. 1.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