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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VY IN ALASKA STORY
  • 알래스카의 낭만

프랑스22

베트남 하노이 여행에서 만난 기찻길 거리 풍경 베트남 하노이 하면 떠 오르는 곳이 대표적으로 호찌민묘와 분묘, 맥주거리, 기찻길거리, 성당등이 있는데 오늘은 기차거리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베트남 하노이 기찻길 마을은 좁은 기찻길 양옆으로 주택과 상점이 밀집된 독특한 풍경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하노이 기찻길 마을은 1902년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건설된 철로를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습니다. 당시 하노이와 중국 남부 지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로였던 이 철로는 이후 베트남 전쟁을 거치면서 그 중요성이 더욱 커졌습니다.그럼, 기적소리 울리며 출발해 보겠습니다. 마침 제가 가자마자 기차가오고 있었습니다.행운이네요. 한국에서는 기찻길 그러면 유흥업소가 연상이 될 정도로 살기 팍팍한 곳이었는데베트남은 관광지로 변신을 했습니다. 멀리서 기적소리가 울리다.. 2025. 4. 1.
베트남 하노이 여행중 들른 맛집과 거리풍경 하노이는 1010년 리타이토 왕조에 의해 탕롱(Thăng Long, "승천하는 용")이라는 도읍지를 만들고추후,  프랑스 식민지기(1883~1954) 동안 인도차이나 총독부 소재지로 운영이 되었습니다. 인구 약, 800만의 도시이면서 오토바이 숫자만700만이 넘는 도시입니다.어린아이만 빼고 1인당 오토바이 1대 이상소유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오토바이세상입니다. 이들에게 오토바이는 운송수단뿐 아니라재산목록 1호이기도 하고 , 다양한 생업에정말 필요한 도구입니다.그래서, 정부에서 오토바이를 사라지게 한다고 공언을 해도 아무도 그 정책을믿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제가 걸어다니며 만난 하노이거리풍경과 맛집을 소개 하겠습니다.힘차게 오늘도 출발합니다. 지난번 소개했던 항다 마켓 쇼핑센터인데정식.. 2025. 3. 31.
베트남 하노이의 맥도널드 1호점을 찾아서 맥도널드는 전 세계에 약, 35,000개의분점을 소유하고 있는 패스트푸드입니다.미국에서는 가장 최악의 햄버거를 파는 곳으로유명하고 가격도 제일 저렴하고 재료 자체가빈약합니다. 그러나, 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많은 이들의관심을 받고 있는데 이제는 맥도널드는잘 먹으려고 하지 않습니다.우리나라에서도 다른 패스트푸드점 재료가그나마 나을 것 같습니다. 특히, 일본에서는 맥도널드 하면 발음도 제대로안되면서 제1위의 패스트푸드점으로 명성을얻고 있는데, 맥도널드 그러면 다들 넘어갑니다. 오늘은 하노이에 2017년 2월 12일 (제 생일과 비슷해 기억함)호안끼엠 호수에 있는 곳에 오픈을 했습니다.한국분들은 이게 무슨 큰 맛집인 줄 알고 방문을 하시는데이 맥도널드가 유명한 이유는 햄버거에있지 않습니다. 바로 그 맥도널드가.. 2025. 3. 19.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일주사를 가다 2부 일주사(一柱寺)의 원래 이름은 연화대 (蓮花臺)로 , 연꽃단을 의미하며, 단일 기둥 위에 신사가 위치한 독특한 건축 양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Lien Hoa Dai는 Dien Huu Pagoda (延祐寺) 건축 단지에서 가장 유명한 구조물입니다 .   장수를 위한 축복을 의미하는 일주사는 워낙 유명해꼭, 들러야 할 코스중 한 곳이기도 합니다. 디엔 후사 (Dien Huu Pagoda)는 1049년 겨울 리타이통(Ly Thai Tong) 왕의 통치 기간에 지어졌으며 1105년 리냔통(Ly Nhan Tong) 왕의 통치 기간 동안완공되었으며 현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노이의 현재 리엔호아다이(Lien Hoa Dai) 건물은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차례 리모델링 되었습니다. 1954년 9월 11일 프랑스가 .. 2025. 3. 13.
베트남 하노이 최초 대학교 시설인 문묘를 둘러보다 문묘는 공자를 추모하는 위패와 동상이 있는사원입니다.천년여의 중국 식민지 지배시절을 이어오며그 모든 제도와 글이 한자를 기본으로 사회가구축이 되었는데, 베트남어는 프랑스 신부가베트남인들이 발음하는 대로 프랑스어로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의 절이나 유적지를둘러보면 모두 한자로 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는데만약, 한글로 되어있다면 신비로움과 다소역사적 의미가 퇴색이 되는 느낌이 들긴 합니다. 물론, 지금 새롭게 개발되는 한국의 관광지들은 순우리말을 이용해 이름을 짓는데,베트남의 문묘는 말과 언어를 만들어준프랑스인들의 공격에 의해 파괴되고짓밟히는 수모를 겪어 겨우 대들보와터만이 남았던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문묘 마지막회로 대학교의 시설과기숙사였던 곳들을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중.. 2025. 2. 25.
베트남 SAPA의 원주민 " H'Mong족 "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프랑스어에서는 이 지역 이름을 " Chapa "로 발음을 하는데원래 사파의 어원은 중국어 중국어: Sa Ba, 沙壩에서 유래가 되었는데 모래해변이라는 뜻입니다. 오늘은  사파에서 약, 52%를 차지하고 있는 원주민중흐몽(H'Mong)족 이야기를 들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흐몽(H'Mong)과 레드 다오(Red Dao) 민족이 다수를차지하고 있어 이들만의 독특한 생활상과 문화를알아가는 것도 여행의 묘미 중 하나가 아닐까생각합니다. 그럼, 상쾌한 월요일 아침 출발합니다. 호몽족이라고도 하지만 민족명을 몽족으로불리는데, 몽족은 국경지대를 따라 베트남, 중국,라오스, 미얀마, 태국등에서 주거하는 소수 원주민 민족집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트남 몽족은 54개 소수민족 중 가장 많은 인구를자랑하는데, 태국과 라.. 2024. 10. 28.
베트남 SAPA의 호수와 사파의 역사 해발 1,500m에 위치한 사파(Sa Pa)는 1901년부터 알려졌습니다. 1903년 프랑스인들은 군사 기지를 건설했습니다. 신선하고 시원한 기후 덕분에 프랑스인들은 곧 열대 기후에 적응하지 못하는 유럽인들을 위한 리조트로 사파(Sa Pa)를 건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913년에 군 요양원이 지어졌으며 현재는 마을의 상수도 지역이 되었습니다.  사파 인구는 약, 9만여 명에 이르는데 그중 절반이사파 중심지에서 살고 있으며 절반은 외곽지역에분포되어 생활하고 있는데 원주민은  흐몽족을위시해 7개의 원주민으로 구성이 되어 있으니그들끼리 말이 통한 다는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아름다운 호수와 주변 풍광을 소개하도록하겠습니다.그럼, 힘차게 월요일 아침 출발합니다. 정말 한폭의 그림 같지 않나요?차량이나 오토바이들.. 2024. 10. 14.
베트남 SAPA의 아침과 야경의 다른 모습들 1905년 프랑스인들이 지배를 할 당시이 지역 사파를 발견하고 휴양지로 개발을하게 되어 지금도 프랑스인들이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지역이름 SAPA는 중국어 이름에서 유래가되었는데 그 뜻은 " 모래 해변"이라는 뜻입니다.프랑스어로는 SAPA를 "CHAPA"로 쓴답니다. 베트남에서 눈이 오는 지역중 한 곳입니다.사계절이 뚜렷해서 비가 자주 내리는 요즘밤에는 제법 쌀쌀합니다.그러니, 판시판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은바람막이 점퍼나 따듯한 점퍼를 준비해 오시는 걸추천합니다. 그럼, 오늘도 변함없이 출발합니다.  호텔에서 일어나 창문을 여니,아침 안개가 자욱해서 마음이 차분하게가라앉는 것 같아 더 잘 까?..하는 유혹이안개와 더불어 밀려오네요. 거의 시내 건물들이 호텔들이라고 봐도과언이 아닙니다. 발코니로 나와.. 2024. 9. 30.
베트남 SAPA를 왜 동양의 스위스로 불리우나 베트남 고지대이면서 아주 작지만 아름다웠던 마을이 주목을 받으면서 상업화의 물결로 원주민들의 입지는 점점 좁아 드는 것 같습니다.  사파는 베트남 북서부의 황리엔 손산맥에 있는 마을입니다. 1922년 프랑스에 의해 언덕 마을로 건설된 이 번화한 고산 마을은 현재 트레킹 명소와 베트남에서 가장 높은 지점인 판시판 산으로 유명합니다.  베트남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오토바이 보다는 차량이 많은 편이라 공기가 비교적 맑은 편입니다.밤만 되면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수많은 관광객들의마음을 들뜨게 하고 설레게 합니다. 사파는 움직이면 바로, 모든 게 돈으로 직결이 됩니다.등산을 해도 가는 곳마다 입장료를 받고 하다못해동네를 들어가도 입장료를 받는 그리고, 폭포마다입장료를 받는 그야말로 날개 안 달린 강도라 할 수있습니.. 2024. 9. 11.
베트남이 여행과 살기 좋은 이유는? 동남아 국가중 한국인을 가장 정겹게 생각하는 나라가바로 베트남입니다.박항서 감독이나 한류로 인한 영향도 크지만 베트남 민족 자체가 아직은 우리나라 70년대 시골 인심과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길을 가다가 무엇을 물어봐도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고친구들끼리 술을 마시다가도 인사를 건네면흔쾌히 술을 건네기도 합니다. 물가 자체도 태국이나 필리핀보다 훨씬 더 저렴하게생각이 드는데 베트남에서 산다고 가정을 하면 특별하게 부동산 투기를 하거나 집을 산다고무리를 할 필요는 거의 없더군요.사회주의 국가라 땅은 정부 소유이기에 렌트개념입니다. 우리가 흔히 월남전이라고 이름을 붙여 호칭을 하지만 이들은 " 항미전쟁"이라고 합니다. 서방국가와 싸워 이긴 나라는 오직, 유일하게 베트남인데 프랑스와의 전쟁이나 미국과의 전쟁그리고, .. 2024. 8. 7.
베트남 다낭의 단골 반미 카페를 가다 베트남 여행을 하면서 카페나 식당을 단골로삼으면 아주 편리합니다.주인장과 간단하게 대화도 나누고 내 입 맛에맞는 음식을 미리 선정을 하고 주문을 하면다음 날 가면 자동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프랑스 식민지의 영향으로 고무나무 대신커피나무를 심게 하고 빵을 만들어 식문화를발전시키고 건축 양식도 프랑스 풍의건물들이 많습니다. 물론, 좋다고 할 수 없습니다.그만큼 베트남 국민의 고혈을 빨아 엄청난 이익을갈취했으니까요.제일 아쉬운 점은 도자기로 유명한 베트남을 프랑스가공장화로 확대하면서 전통 기법들이 많이 사라졌다는 겁니다. 바게트 빵에 여러 다양한 토핑을 하여 만드는 반미는한 끼 식사로 너무 안성맞춤입니다.제가 자주 가는 단골 카페를 소개합니다. 반미의 뜻은 "반"은 과자나 빵을 뜻하고 "미"는 밀을말합니다. .. 2024. 8. 5.
베트남 다낭의 도심지 사찰을 찾아서 베트남의 불교는 다른 나라의 불교와 궤를달리하고 있는데 베트남인들이 탄압을 받듯이불교인들의 탄압이 아주 오래전부터 다양한 형태로 탄압을 받았습니다. 중국으로부터 그리고, 주변국들로부터 대승불교가전해져 자리를 잡았지만 , 프랑스의 식민지 때부터는본격적인 불교 탄압이 강했습니다. 프랑스의 가톨릭이 자리를 잡기 전에는 베트남은프랑스로 유학파들이 생겨나고 대통령은 불교를본격적으로 탄압을 하자, 불교계의  종장(宗長) 틱꽝득은 인권과 종교의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서 비폭력항쟁에 참여하였고, 정부에 여러 번 간곡한 편지를 보내서 불교탄압을 중지해 달라고 촉구하였지만 탄압이 계속되자 이에, 틱꽝득 스님은 1963년 6월 11일 판딘퐁(Phan Dinh Phung) 거리에서 가부좌를 한 채로 몸에 기름을 붓고 많은 사람.. 2024. 7.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