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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y알래스카
한국인 최초로 알래스카의 구석구석을 발로 뛰면서 다양한 경험과 여행을 통한 알래스카 전문가 입니다. "인생을 시작하려면 알래스카를 가라"는 말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알래스카는 무한한 도전과 가능성을 갖고있는 마지막 남은 미 개척지이기도 합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알래스카" 자연속의 삶이 그립다면 언제라도 알래스카로 오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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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귀에 너무나 익숙한 Eskimo라는 단어는

" Inuit " 가 공식명칭이긴 합니다.

알래스카가 알려지기부터 에스키모라는 말이 

원주민과 외부방문자와의 은근한 자존심 겨루기로

기피를 하게되는 단어가 바로 에스키모라는 

명칭이었습니다.

캐나다 인디언들이 이들에게 붙인

이름이기도 합니다.

 

남들로부터 불리워지는 별명인 "Eskimo "라는 

단어에 은근히 기분나뻐하기 시작을 했지만,

이제는 그 별명으로 불리워도 그다지 공격적이지는

않습니다.

 

1920년부터는 각 나라의 선교사와 목회자들이 

안 간 곳이 없을 정도로 작은 마을에까지 파견이 

되었습니다.

 

나라가 생기면 제일 먼저 등장하는

부분이 바로 종교입니다.

탐험이 이루어지면서 동시에 개척이 이루어지는 게

바로 종교의 확장이 아닌가 합니다.

오늘은 원주민 마을의 에스키모인들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북극마을에서  해를 볼 수 있다는 건

그들만의 축복에 가까운 

하늘의 보살핌이라고 믿습니다.

이들에게도 샤머니즘이 존재하는데,

마치 한국의 전통 샤머니즘과

아주 흡사하기도 합니다.

 

1904년부터는 다양한 나라의 상인들과

선교사들이 활발하게 북극을 방문해서

이들과 교역을 하기에 이루었는데 특히 영국의

상선들이 북극의 곳곳을 누비게 되었습니다.

 

고래가 잡히는 북극지방의 동네에는

일본에서 선불을 주고 모두

사갈 정도로 지금도 그 인기는 여전합니다.

많은 나라가 고래의 남획을 막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경주하지만,

아직까지도 포경을 허락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일본입니다.

 

 

너무나 평온한 바다 위 , 바다새 한 마리가

평화롭게 노닐고 있네요.

 

한겨울에 아주 흔히 접하는 풍경입니다.

얼음의 두께를 알아보는 개척정신의

북극 원주민입니다.

막대기로 두둘 기면서 얼음 상태를 점검하는데,

얼음이 두껍게 얼어야 

스노 머쉰을 타고 사냥을 나갈 수 있습니다.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항공기 산업의 발달로

더더욱 북극은 몸살을 앓게 되는데, 시도 때도 없이

비행기를 이용해 원주민의 마을을 

방문하는 이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 비행기로 인해 각 동네에서는

Gold rush 가 탄생하게 됩니다.

금이 발견이 되면서 엄청난 인파가

몰리기 시작을 합니다.

각종 다양한 문화가 밀려오면서 ,

그 후유증도 아주 깊어만 가는데

특히, 술과 마약, 대마초로 인한 후유증은

지금 아주 큰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미국의 지배로 금전적인 보상이 대대적으로

원주민에게 이루어지게 

되는데, 가구당 지불한 그 돈의 액수가 어머어마 하지만,

이들은 돈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기에

그리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보통 택시를 타게 되면 일인당 3불에서 5불 내외지만,

100불짜리를 내고도 거슬러 주지도,

받지도 않는 일대 혼란의 시기가 

있었습니다.

오죽하면 , 택시기사의 한 달 수입이

만불을 넘기도 했다니 그 당시의

혼란은 극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한인들이 속속 식당과 택시로

확산 영업을 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로 인해 한인에 대한 이미지가

점점 나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글이 없었을 뿐 아니라 ,

언어 자체도 각 부족 간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완전히 다른 언어체계였습니다.

심지어는 구전으로 배우지 않은 단어들이

자꾸만 사라져 자라는 아이들이

말을 못 알아듣는 경우도 허다하게 발생을 했습니다.

 

영어가 공통어가 되면서 이제는 원주민어를

기억하는 청소년들이 

없을 정도로 에스키모만의 전통이 점차 사라지는

시기가 도래했는데,

이는 애초 미국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면서

부족의 언어 말살 정책을 편 

이유도 있었습니다.

 

캐나다에서는 상호 Inuit 족과의 전쟁과 불화는 있어 왔지만 ,

알래스카서의 부족 간 전투나 불화는 거의 없는 편입니다.

먹을 만큼 사냥하고, 사냥을 하면 싱글맘이나

편모 가정도 똑같이 사냥감을 

분배하여 나누어주는 공동체 의식이 강했기에 ,

이들에게 다툼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10세기 초에는 북극마을에 거주하던 이들이

점차 사라져 모습을 감추기도 했는데,

이는 식량의 부족과 각종 질병에 대한 이유로 

사라졌다가 다시 알루샨 열도를 타고

내려온 부족들이 생겨나면서

다시 모습을 나타내다가 지금의 원주민이 되었습니다.

 

이누이트 부족의 결혼문화는

그리 엄격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종족번식의 개념이 강했기 때문에

일부다처제가 허용되기도 했었습니다.

서로 다른 부족과의 교류를 통해 결혼을

추진하게 되는데 이는 근친상간의 

부작용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래서 외부에서 방문을 하면 자기 부인과

동침을 시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아직도 백인들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은

소수민족이거나 , 나이 들은 원주민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그들만의 전통을 무시하고 말살한다는

침략적 의미의 반향이기도 합니다.

 

북극에서의  저녁노을은 언제 봐도

가슴이 따듯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지난번 , 잡지 말라고 규정을 해놓은

고기를 잡다가 발각이 되어 

벌금을 물었던 원주민이 있었답니다.

마을에 상주하지 않는 주정부 관리지만,

간혹 순회를 하다가 이렇게

적발이 되면 이들은 상당히 곤혹스러워합니다.

 

대를 이어 사냥을 해왔던 이들에게

생선의 종류를 적시하면서 잡지 말라고

법을 제정해 놓으니, 처음에는 황당했을

이들이 상상이 갑니다.

 

같은 몽골반점이 있는 부족이기에 한인들은 친밀감을 쉽게 

느끼기도 하는데, 우리네 오래전 모습과

별반 차이는 없어 보이는 외형적 

모습으로 유대감을 갖기도 합니다.

 

이 마을에는 병원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프면 바로 경비행기를 불러

큰 마을로 이동을 하게 됩니다.

한 번은 목에 가시가 걸려 비행기를 급히 불러서

타고 가다가 가시가 다행히 넘어가 비행기를

다시 돌려 돌아온 적도 있답니다.

 

주민들을 보면, 치아가 많이 상한 걸 불 수 있는데 ,

너무 관리를 안 해주는 것 같더군요.

열에 아홉은 치아가 상했더군요.

 

원주민 마을의 의료시스템이 제일 안타까운

점이 아닌가 합니다.

다행인 건, 모든 치료는 병원에서 무료로

치료를 해준다는 사실입니다.

각 부족별 지정 병원이 있는가 하면,

모든 부족이 다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종합병원이 있습니다.

 

 

이들은 오로라에서 조상의 영혼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다음 생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전설이 있어 이들에게

오로라는 신앙이기도 합니다.

이들의 구전동화는 고래의 신화와 바다코끼리 사냥을 하는

모험 이야기들이

물론, 순록에 얽힌 이야기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동화의 세상이기도 합니다.

동화를 개발해서 책으로 내도 좋을 듯하네요.

 

posted by 알래스카 여행작가 ivy알래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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