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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VY IN ALASKA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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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다낭과 호이얀 여행 그리고 후에

베트남 여행에 들른 후에(HUE) 황궁의 정원과 호수

by ivy알래스카 2024.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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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여행을 오시면 누구나 한두 번 정도는

마사지를 받는데 저도 마사지를 여러 번 받아

보았습니다.

가격은 보통 60분에 300,000동(한화 16,000원)

입니다.(아로마 전신 마사지)

90분은 400,000동에서 500,000만 동 사이인데

요새 같은 비수기에는 세일을 많이 하더군요.

 

태국에서도 마사지를 여러 번 받았는데 태국 보다는

한 단계 위였습니다.

가격은 태국 타이 마사지는  평균 7,000원 정도였는데

돈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엉망입니다.

 

제가 제일 궁금한 건, 마사지 직원들 손 피부가

엄청 까칠하다는 겁니다.

껄끄럽다고 해야 하나요?

매일 마사지를 하면 부드러워야 할 텐데 왜

거친지 모르겠더라고요.

이게 아직도 풀리지 않은 궁금증입니다.

제 손 보다도 엄청 거칠더군요.

 

오늘은 후에 왕궁에 있는 정원과 호수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왕의 일생을 잠시 들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후에 조약을 통해 나라를 통째로 프랑스에 가져다가 바치고

황후와 아이들 5명을 모두 놔두고 해외로 도피를 한

응우엔 마지막 왕조의 왕인 바우다이의 이야기입니다.

 

유일하게 오래 장수를 한, 바우다이는 장수 한 이유를

국민에게 너무 욕을 많이 먹어서라고 하는 설이 있을 정도로

천하에 없는 바람둥이였습니다.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파티에서 

인도차이나 거부 출신의 딸을 만나 한눈에

반해 버리고 청혼을 하지만. 신부 측에서 반대를 이유로

여러 조건을 내세웁니다.

베트남은 불교 국가인데 남프엉은 기독교를 믿으니

종교를 보장해 달라는 점이고, 결혼과 동시에 황후

칭호를 달라고 하였는데 황후 칭호는 황제가

사망을 한 뒤에야 왕비에게 내려질 수 있는 칭호라

모든 신하들이 반대를 하였지만 , 바우다이는 강짜를 부려

결국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황후 남프엉은 각종 정치와 외교에도 남다른 처세를 해서

국민들이 상당히 좋아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왕이 베트남을 프랑스에 고스란히 가져다 바치자

호찌민이 나서서 폐위를 독촉하여 결국, 폐위가

되었습니다.

 

 

바우다이는 폐위가 되자마자, 하노이를 비롯해 여러 나라로

돌아다니면서 정부를 두어 생활하면서 생활비를 황후에게

보내 달라고 번번이 요청을 하였는데 황후는 이를

거절치 않고 송금을 해주게 됩니다.

 

왕은 정치적 망명을 한다며 홍콩에 정부와 같이 

도착을 했는데 그 정부에게 직접 황후가 편지를

보내는데 내용이 정말 대단합니다.

" 당신이 내 남편을 보살펴 주어 정말 감사하고

나중에 만나기를 고대한다"라고 보낸 편지는

정말 유명합니다.

 

황후도 남편이 바람을 피우며 돌아다니는 걸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호찌민이 황후에게 매달 만불정도를 생활비로

지불했으나, 황후는 이를 모두 고아원이나 어려운

이들을 위해 모두 지원하였습니다.

 

결혼 전, 황후의 집은 당시 베트남 국왕 보다도 재산이

많은 집안이었습니다.

결국 다섯 명의 아이를 데리고 프랑스로 유학을 위해

정착을 하는데, 당시에도 남편인 바우다이는  같은 프랑스에

살면서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황후는 프랑스 한 시골 마을에서 홀로 지냈는데

아이들은 교육을 위해 프랑스 파리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정원을 가꾸며 홀로 지내다가 급기야

1969년 9월 16일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는데

심장마비였는데 시골이다 보니, 제대로 된

의사가 없어 이렇게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는 가톨릭식으로 간소하게 치러졌고

아들, 딸들만 참석을 하였으며 장례식에도 바우다이는

결국, 나타나지 않았습니다.(인간쓰레기 인증)

 

황후의 무덤은 프랑스 시골 가톨릭 묘지에

안장이 되었습니다.

국민의 어머니라고 칭할 만큼 존경받았던 황후의

일생은 정말 제가 봐도 놀라웠습니다.

(우표로도 발행)

 

미스 인도차이나에 등극할 정도로 그 미모는

뛰어나서 바오다이가  첫눈에 반했을 정도이며

지금 봐도 그 미모가 출중했습니다.

 

미국의 폭격에 폭탄 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는

성의 한 부분입니다.

그 옆, 성은 아예 흔적조차 없습니다.

 

프랑스 식민지부터 독립운동을 했던 호찌민은

폐위된 왕인 바오다이에게 새로 건립된

정부의 고문을 맡아 달라고 하지만

이를 거절하고 " 세상은 넓고 여자는 많다"라는

신조어를 만들고 바람을 피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황후는 아이들과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후에에서 생활을 하게 되는데 봉사 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녀가 프랑스에 도착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많은 재산들을 처분하여 자선단체에

기부를 하고 본인은 시골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베트남이 모계사회이긴 하지만 그녀는 베트남인이 

아니지만, 베트남의 문화를 존중하고 불교 행사에도

자주 참석을 하였습니다.

 

황후 남프엉이 사망을 하자, 그동안 동거 하던 정부인

프랑스 외교관 출신 여성과 재혼을 하게 되는데

나이 차는 33세였습니다.

두 명의 황후와 6명의 정부 그리고, 13명의 자녀를 두었던 바오다이는

평생을 잘 먹고 잘살았습니다.

 

우리가 곰곰이 생각을 해 보면 히틀러를 빼고

인간성 나쁜 사람이 오래 장수할 확률이 높더군요.

김일성을 비롯해 욕을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잘 사나 봅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우리보다 더 역사가 긴

베트남에 얽힌 이야기는 정말 많습니다.

돈을 예금하면 오히려 보관료를 받았던 은행들이나

15호 감시제를 꾸준히 유지해왔던 공안정국

그리고, 외국인은 수배 30분이면 잡을 수 있는

시스템은 기가 막힐 정도입니다.

 

저도, 신고하지 않고 다른 동네 놀러 갔다가 

벌금 문 적이 있었습니다.

재미난 일들이 많았는데 나중에 들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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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페어뱅스에 있는 치나 온 천 풍경입니다.

경비행기를 타고 온천에 오셔도 되는 활주로가

있습니다.

겨울에는 오로라와 함께 야외 온천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온천은 금을 캐다가 발견한 온천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3oOSRky8Z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