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하노이와 사파,닌빈,짱안 이야기

베트남 하노이의 감옥 박물관을 가다

ivy알래스카 2025. 6. 2.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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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부터 1901년까지 건설을 한 호아루 교도소는

프랑스가 정치적으로 위험한 인물들을

(특히 장기수) 호아로 교도소에 감금을 하고

전기철조망을 설치하고 강제 노역을

시켰습니다.

 

1913년에는 감옥을 개조해서 수용인원 460명에서

600명으로 늘렸습니다.

 

 1916년에는 730명의 수감자를 수용하면서

초만원을 이루었는데

그 숫자는 1922년에 895명, 1933년에는

1430명까지 치솟았습니다.

 

 1954년경에는 2,000명 이상의 포로를

수용하고 있었으며, 수감자들은 인간 이하의

상태에 쳐해 있었고, 식민지 착취와

프랑스인들을 향한 베트남인들의

원성의 대상이었으며,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였습니다.

 

베트남인들의 공포의 대상이 나중에는

베트남전쟁에 참여했던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들의 공포의 교도소였습니다.

 

프랑스에 의해 보고 배운바가 있어

나중에는 더 철저하게 포로들을 잔혹하게

관리하였지만 지금은 , 그 흔적들을

완벽하게 지우고 오직, 베트남인들의

고난에 대한 역사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럼, 베트남 감옥 박물관 이야기

활기차게 출발합니다.

 

 

지붕에 설치된 전기 철조망입니다.

 

 1910년대에서 1930년대까지, 거리의 행상들은

감옥 창문을 통해 외부에 서신을 전달하고,

벽 너머로 담배와 아편을 전달했습니다.

 

감방에서는 서신과 봉투를 반대 방향인

거리 쪽으로 던졌습니다.

수용소 내에서는 포로들은 각종 정치현안에 대한

이야기들을 은밀하게 나누었으며 그 내용들은

외부에 편지를 통해 전했습니다.

 

입장료는 4만동(약,2,000원) 매년 인상됨.

 

1930년대와 1940년대 공산주의 북베트남 내의

많은 지도자급 인사들이 이곳 수용소에서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베트남 전쟁 중, 호아로에 수용된 최초의 미국인은

1964년 8월 5일 총상을 입고 붙잡힌

에러벳 알바레즈 (Everett Alvarez Jr.) 중위였는데, 

처음부터 미군 포로는 열악한 식사와

비위생적인 환경 같은 비참한 상황을 

감내 해야만 했습니다.

 

수용소 단지는 미국 포로들에 의해

유명한 호텔 체인 힐튼 호텔을

조소적으로 참조한 ‘하노이 힐튼’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베트남에는 아직도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우물들이 많이 남아 있으며 사용 중에 있습니다.

다낭이나 호이안 고대도시 정중앙에도

대형 우물이 남아 있습니다.

 

그 작명을 한 최초의 미군 포로 집단에 대해서는

약간의 불일치가 있지만, 공군 F8D 조종사였던 

밥 슈메이커[7]가 공군 중위 로버트 필(Robert Peel)의

도착을 환영하기 위해 물통 손잡이에

“하노이 힐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새겨둔 최초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종전 75주년을 맞아  매년 7월에는 순교자의 날이

있어 추모를 하는 행사가 있습니다.

 

" 호치민 만세 "

"새로운 날을 맞이하며"

"새로운 날을 기다리며 "

 

이 교도소에서 감금 생활을 오랫동안 하고

독립운동을 했던 수많은 

정치지도자들은 나중에 해방이 되고서

각광을 받지 못했지만, 미국과 영국, 프랑스를

돌며 지냈던 호찌민은 귀국해서 총리를 맡아

오랫동안 베트남을 통치를 하고 국부로 추앙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걸 보면 ,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떠올리게 되네요.

영어 할 줄 안다는 사실 하나로 미국에 사는 

교민들이 만든 학교나 단체들을 하루아침에

삼켜버린 이승만.

 

독립자금을 보내주면 한창 연애 중이던

프란체스카와 여행을 하며 자금을 탕진을 

했던 이승만.

 

영어 할 줄 알고 친미라고 인정한 미군들에 의해

탄탄대로를 걷던 이승만.(친일파)

그리고, 호찌민처럼 수많은 정적들을 죽여버린

점들이 이승만의 행적이었는데 결국은, 하야를 하고

하와이로 도망을 가기에 이르렀습니다.

 

지금도 프랑스어로 적힌

호아로 교도소 현판.

 

1964년 8월 5일부터 1973년 3월 31일까지

호아로 수용소는 북베트남 폭격 중 격추된

미국인 조종사를 구금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추억의 재발견 "

" 추억을 찾아서 "

하수구에 있는 팻말 내용은 

" 여기로 들어오지 마시오 "

ㅎㅎㅎ

 

베트남의 특징이 난세가 많아 황궁을 비롯해

모든 관공서는 정권이 무너지면 개판 오 분 전이

된다는 겁니다.

 

동네주민들이 모두 몰려들어 유물들이나

각종 귀중품들을 모두 털어 갑니다.

그래서, 제대로 남아 있는 게 없고, 민란이

일어나면 약탈이 일어나 역사가 도중에

끊기는 일이 허다합니다.

 

여기 수용소라고 다를 바 없었습니다.

 

단체로 화장실을 갈까요?

와.. 지리겠네요.

 

오래전에 호찌민에 있는 대통령궁에

간 적이 있었는데 수많은 금은보화와 귀중품들이

약탈당하는 현장 사진을 보았습니다.

 

모든 황궁들이나 관공서들도 약탈이 되어

귀중한 유물들이 얼마 없는 실정입니다.

오죽하면 그런 유물들이 암암리에 시장으로

흘러 들어와 저도 서너 점 구입한 적이

있었을 정도입니다.

 

대통령궁의 화려함도 화려함이지만

약탈이 기본인 베트남인들의 폭력성은

말로 다 표현을 하지 못하겠더군요.

 

미군 조종사가 낙하산을 타고

탈출을 하려다가 붙잡혀 여기

수용소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베트남전에 참여를 했던 연합군들 

포로 이야기는 기록물에 남아 있지 않아

알 수가 없네요.

 

부분적인 역사가 사라진 그 흔적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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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썰매 경주 준비과정인데 제일 앞에 있는

개가 서열이 제일 높습니다.

출발 준비를 하고 있는 개썰매 현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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